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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나의 이야기

포르투갈 여행

<Até mais, lisboa! (다음에 또 만나요, 리스본!)>  Written by IRENE
 
스위스 베른에서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성실하게 살던 한 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낯선 여인의 자살을 막게 되고 말이 통하지 않는 그녀에게 모국어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포르투갈어’ 라는 한 마디는 기묘하게 그의 마음을 울리고, 자주 가던 동네 책방에서 마침 포르투갈 의사가 쓴 책을 손에 넣습니다.그 길로 그는 일정도 기한도 없이, 베른의 일상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 한 도시를 향해 야간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아주 평범한 한 중년 남성은 어떤 의사의 삶의 궤적을 좇는 것에 전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2004년 출간된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이야기이고 소설 속 그 도시는 바로 포르투갈 리스본입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읽은 20대 초반부터 저에게 리스본은 언젠가 삶에서,아마 운명이라 불러도 좋을 어떤 계기를 만난다면 훌쩍 떠나갈 도시라는 이미지로 남아있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이곳이 리스본이었다.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 서서 생각하게 됐고, 어떤 포르투갈 의사가 마치 그에게 쓴 것처럼 느껴지는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어 찾아온 도시.” 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이 책에 대해 잊고 있다가 작년 언젠가 문득 떠올라 구매해서 다시 읽었고 몇 년 전 나왔던 영화도 찾아보았습니다.그렇게 홀리듯 책으로 영화로 아주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 남자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무척이나 리스본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주인공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흔적을 따라 리스본으로 떠났습니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책 한권과 그 책에 쓰인 언어를 다룬 문법책을 손에 쥐고. 존경받는 의사이자 은유에 능한 시인이며 고결한 이상을 지닌 귀족이자 저항운동가이면서 격렬한 사랑에 빠졌던 프라두의 인생을 조합해가며 그레고리우스는 40년 가까운 세월 한결같이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한 작가가 낯선 언어로 엮어낸 세계를 여행하며 평생 생각해본 적 없는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과 삶, 실존과 언어에 대해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던지는 화두입니다. 주인공은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질문을 거듭합니다. 어쩌면 철학 교수이자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가 이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평단에서는 작가가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소설과 영화는 디테일에서, 그리고 연출 방식에서 다소 다르지만 그래도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어쩐지 신비하면서도 조금 음울한 분위기는 그대로였습니다.그래서인지 도시는 아름답지만 어둡고, 맑은 날에도 흐린 듯한 느낌으로 연출되었기에 제 상상 속 리스본 역시 언제나 낮은 채도로 그려진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포르투에서 기차를 타고 리스본에 도착하여 영화에 나왔던 산타 아폴로니아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내리쬐던 강렬할 햇살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안개와 구름이 많았던 포르투와 대조적이어서 더 그랬습니다.리스본에 머무는 내내 새파랗고 쨍한 하늘이 함께해주어, 실제로 경험한 리스본은 맑고, 밝고, 환한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선입견의 필터가 씌워져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도시의 골목에 언덕에 강가에 고독하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묻어 있는 듯하여 순간순간이 애틋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라며 여행 내내 그를 사로잡았던 사유에 나름대로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소설의 작가가 대담에서 “우리는 내면에서 요구하는 모든 삶을 다 살아낼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렇다면 경험하지 못한 나머지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머지 부분은 당신의 판타지를 놓아두는 공간이다’라고 대답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다소 낭만적인 결론입니다. 책과 영화의 말미에서 그레고리우스는 결국 본래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베른으로 돌아갑니다. (영화는 조금 더 로맨틱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그는 돌아갔지만 돌아간 그는 예전과는 다릅니다. 표현되지 못한 내면의 저항의 힘에 또다른 리스본으로 떠나갈지, 아니면 다시 그 리스본으로 돌아갈지, 그것도 아니라면 베른에 남을지, 그 이후 그의 삶의 공간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떤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간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저도 때로 저의 일부분들이 제가 거쳐온 많은 장소들에 흩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다녀온 리스본은 실제로 머문 시간은 짧지만 이 도시를 갈구한 시간이 길어서인지 제게 큰 울림과 그리움을 줍니다. 제가 리스본에 남기고 온 것은 무엇인지, 언젠가 그곳에 다시 가면 찾게 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Até mais, lisb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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